[Diary]

유학을 나와서 처음 일년간의 적응기간을 마치고, 이제 어느정도 예측가능한 1년의 스케줄 속에 녹아들어가고, 생활의 안정이 찾아오면서부터 조금씩 느끼던 갑갑함의 원인을 찾아낸 것 같다. 그것은 꿈의 부재였던 것 같다.

그러나 꿈이라는 것은, 어른이 되고 현실을 알아갈수록 가지기 어려운 것임이 분명하다. 어릴때는 아무리 현실성이 떨어지는 꿈이라도 마음껏 꿀 수 있었는데, 머리가 자라고 주변의 환경을 인지하고 스스로의 능력을 알아갈수록(알아간다고 느낄수록) 그것이 스스로의 꿈꾸는 능력을 옭아맨다. 한편으로는 너무 거창한 꿈을 꾸면 나중에 느낄 커다란 실패감이 두려워서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주변의 비웃음이나 안타까운 시선이 쪽팔려서이고, 또 한편으로는 그 꿈을 스스로에게 설득시키기 조차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꿈꾸지 않고 현실적인 목표만을 세우고 현실적인 노력만을 하며 현실적으로 가능해뵈는 업적만 쌓으며 사는 방법도 있다. 그러한 것에 만족하고 사소한 것들에 즐거워하며 행복하게 산다면 그것도 결코 나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어릴때부터 항상 꿈꾸며 살았고 그 꿈을 실현해나가는 데 재미가 붙은 사람들에게 현실적인, 안정된 삶은 욕구불만을 일으킬 뿐 인 것 같다. 부딪혀 깨져서 펑펑 운다고 하더라도, 변화없는 생활속에서 항상 방긋방긋 웃기만 하며 사는것보다는 더 재미있기 때문에.

그래서 누가 나에게, 혹은 나스스로가 나에게, 꿈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뭉뚱그려진 대답밖에 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엔지니어의 특징이랄까, 막대한 재정적 뒷받침이 없으면 웬만한 프로젝트는 가기 힘든 이분야의 특징이랄까... 내가 큰 컨셉으로, 어떠어떠한 걸 만들겠소..라고 해도 내가 디렉터가 아닌 엔지니어로서 참여하려면(이게 내가 원하는 바이고..) 그중 작은 한부분의 일이 될거고, 그렇다고 작은 분야에 맞춰서 꿈을 잡자니, 다른 연계시스템들에 의해 세부적인 사항이나 방법은 바뀌기 쉬운것이 또 문제이다. 어떻게 꿈을 잡건 그것이 실현된 모습은 처음 상상했던 꿈과는 달라지게 된다.
결국 나의 꿈은 '거대 우주 안테나/텔레스콥/레이다/솔라어레이 등등 같은 것들을 개발하는 엔지니어중의 하나' 뭐 이런식으로 뭉뚱그려질터.
하지만 그게 엔지니어의 매력이기도 하다. 평생 한가지 프로젝트만 하다가 죽으면 덜 잼있자나.. 한가지 "일"만 꿈으로 잡고 사는 것보다, "나는 어떠어떠한 분야의 이러이러한 엔지니어가 되겠다."라는 식의 꿈을 잡고 이것저것 재미난거 다 해보고 여러분야에서 실력발휘하다가 죽는게 낫지..

뭐 아무튼 그런식으로 내가 되고 싶은 나의 모습을 정립해 나가고 있다.
우선 나의 메인필드는 스트럭쳐럴 디자인앤 컨트롤.
그러나 내가 지향하는 엔지니어로서의 모습은 관련된 다양한 분야(모든분야는 절대아니고! 문어발이 되고 싶진 않다)에 기본적인 안목을 가지고 큰그림을 그릴 수 있는, 넓은 시야를 가진 엔지니어이다.
그리고 동료들 사이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신뢰를 받는 엔지니어가 되고 싶다. 여자이기 때문에 혹은 동양인이나 외국인이기때문에 끌려다니는 사람이 되기보다, 내 목소리를 낼 수 있고 나의 의견이 동료들에게 존중 받는 그런사람이 되고 싶다. (이것을 위해서는 개인의 능력이 필수적으로 뒷받침이 되어야 하는것이고.. 입만 열면 얼토당토 않는 얘기를 하면 아무도 그사람의 의견을 존중하지 않는다.)

그래서, 어느날엔가, ESA나 DLR이나 NASA같은 굵직한 연구소에서 일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꿈꾼다.
그리고 그보다 조금은 구체적인 목표로, DLR에 입사해보고 싶다..라는 꿈이 생겼다. 독일에 유학왔으니, 독일항공우주국에서 일할 기회를 얻는것만큼 내 실력을 인정받고, 유학나온 곳에서의 주류로 인정받을 수 있는 일은 없을 것 같다.
뮌헨 근교의 DLR Oberpfaffenhofen에서 일하는 날을 꿈꿔본다. DGLR의 컨퍼런스에 가서 독일어로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날들도 꿈꿔본다.
이런 상상을 하고 있노라면, 이제야 제대로 독일어를 공부할 마음도, 박사주제만이 아닌 좀 더 일반적인 경향을 볼 마음도 생기는 것 같다.

나를 이끌어온것은 항상 Dreaming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한시도 꿈꾸는 것을 멈추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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