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ttp://blog.naver.com/rodentia/10000798667 | |
박완서씨의 기행산문집. 12/22 발행된 따끈따끈한 책이다. 저자의 유명도 때문에, 그리고 목차에 소개된 여행지가 맘에 든다는 이유로 선택한 책. 박완서씨의 유명한 소설집 중 몇권..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두부.가 집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 책중 나는 단 한권도 읽은 책이 없었다. 아직 한국 소설에 재미를 붙이지 못했던 이유도 있었고... 표지가 맘에 안들어서.라는 이유도 ㅡ.ㅡ 사실 내가 읽는 책 중 80%정도가 외국작가가 쓴 책인데.. 한국 소설에 대한 거부감은 중고등학교때 열심히 혹은 강제로 읽던 한국 대표 중단편집들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읽고 작품을 되씹으며 즐기기 보다는.. 몇십편을 모아놓은 두꺼운 책을 잡고.. 저자소개 읽고 본문 읽고 해석도 읽고 싸그리 외우고.. 재미 있을리도 없었을 뿐더러, 시대의 차이로 인한 단어나 표현에 거부감이 먼저 일었다. 어른들은 섬세하고 감질맛난다고 하는 표현도 우리에게는 마치 어색한 번역물같은 느낌을 자아내기도 한다. (세대공감 올드앤뉴만 봐도 알겠지 않은가..?!) 1930년대의 문학작품이 언어가 주는 그 느낌 그대로 감미롭게 다가올리는 없었다. 오히려 지금에와서도, 비슷한 분위기의 한국 소설을 읽다보면 '이 글의 주제는 무엇인가', '시대적 배경은?', 'xx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따위의 생각을 하게되곤 한다. 소설에 사용된 독특한 억양, 묘사, 사투리의 '맛'을 음미하기보다는 저자가 이러한 것을 통해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하고 농촌의 투박한 아름다움을 표현해 내었다.' 따위의 말이나 지어낼 수 있을 뿐이다. (실제로 그렇게 느끼지는 않는다. 농촌의 투박한 아름다움따위가 도대체 뭔지 내가 느껴본 적이나 있냔 말이다..) 아무튼 이러한 이유로 한국 사람이 쓴 책은 주로 여행기를 읽게 되고.. 아니면 에세이, 교양과학 류.. 다행히 박완서씨도 기행산문집을 내 주신 덕분에 처음으로 접하게 되었다. 읽기 전 목차에서 살펴 본 바로는.. 다루는 여행지는 남도, 하회마을, 섬진강, 오대산, 바티칸, 중국, 백두산, 상해, 에티오피아, 인도네시아, 티베트, 카트만두. 한국 여행지인 남도, 하회마을, 섬진강은 나도 가본 곳들이라 더 설레였다. 내가 보고 느낀 것을 이 유명한 작가님은 어떻게 그려내고 계실까..하고. 아주아주 솔직히 말하자면, 이 책의 첫인상은 거부감이었다. 고급스럽고 유식한 말들을 잘 골라내어 배열할 수 있는 문학인의 감각을 자랑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본문이 시작되는 두번째 페이지 (p.10)에 있는 구절이다. 소위 경제 발전이란 명목으로 기를 쓰고 잘살기만을 추구하다가 문득 무슨 속죄의 의식처럼 전혀 발전이 안 된 시골을 꿈꾼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사치롭고도 아니꼬운 도시 중심적인 사고인가. 농촌을 대상화하지도 말아야겠지만 속죄양을 만들어서도 안된다는 생각으로 어디에도 이제 고향은 없다는 상실감을 달랠 수 밖에 없었다. 이 구절에서 책을 읽기 시작하자마자 거부감이 팍 들었다는 건.. 나의 오바인건가? ㅡ.ㅡ;;; 아니면 그냥 세대차이인 걸까? 사실 내또래가 쓰는 표현들은 상당히 간결하고 한자어도 적다. 어른들이 쓰는 표현은 길고 한자어를 많이 쓰고 수식어구나 부사어구도 많다. 그렇다고 귀염이가 쓰는 글 따위가 좋다는 것은 아니지만.. (얘는 생각이 있는건지 없는건지 잘 모르겠다. 어디서 멋있어 보임직한 말들만 주워다 놓는 것 같은 느낌 뿐.) 아무튼. 박완서 씨는 정말 '상실감을 달랠 수' 있었을까? 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어쩌면 앞으로의 기행문이 자신의 통찰력과 공정하고 바람직한 사고를 자랑하는 '자랑문'이 되는건 아닌지 두려움이 엄습하기도 했다. ㅡㅡ; 그러나 다행히 글을 읽어가면서.. 내가 느꼈던 그 거부감이라는 것은 옛날 임금님의 '짐이 ~하노라' 라고 말하는 것 정도의 세대차이, 혹은 세대에 다른 표현 차이 일뿐인 것 같았다. 솔직한 마음, 자기반성, 한비야씨와 같은 젊은 세대의 글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좀 더 넓은 시야.는 박완서씨의 기행집만이 가지고 있는 깊은 맛이라고 해도 될 것 같았다. 많은 것을 경험하고 느낀 세대 답게 다른 나라의 현재상황을 바라보는 눈도.. 시대적으로 넓은 범위를 포괄하고 있고 공간적으로도 우리나라와 적절히 비교해 주는 것도, 요즘 넘쳐나는 20~30대들의 여행기와는 비교할 수 없는 장점이었다. 근 5년 사이에 나온 많은 여행기들이 경박한 묘사(~를 봤다. ~가 멋있었다. ~가 생각났다. ~한 일이 있었다. 정도로 요약될만한..)들로 가득찬, 그저 독특한 경험을 담은 젊은 세대들의 용감한 여행기.일 뿐인 것과 매우 비교되었다. p74의 글이다. 외국에 나가면 다들 애국자가 된다고 한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한시도 한국인임을 잊을 수 없음은 일종의 강박관념이었다. 경제 문화의 선진국을 처음으로 보았을 때의 열등감이나, 하나라도 더 보고 배워야지 싶은 사명감, 흉잡힐까 봐 전전긍긍하는 자존심들이 다 애국심에서 우러나온 콤플렉스였다. 여행이 자유로워지고 가까운 동남아로 여행을 많이 하게 되면서, 일부 관광객이 돈 씀씀이나 행동을 헤프게 하는 것도 실은 우리보다 못한 나라에서 안심하고 우리의 경제발전을 뽐내보고 싶은 천진한 자부심의 발로가 아니었을까? 또 최근까지도 금기의 땅이었던 사회주의 국가가 개방되자 앞을 다투어 구경하러 간 우리는 보고 듣는 것마다 사사건건이 사회주의의 실패와, 역시 자본주의가 우위였다는 걸 확인하기 위한 증거로 삼으려고 잔뜩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 .그건 국내에 있을 때에 자본주의를 회의했거나 말거나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문제였다. 내가 홍콩가는 비행기 안에서 유난히 피곤하고 도무지 신명나지 않은 것도 여행을 연달아 해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앞서 가본 두 나라가 다 최근에 개방된 사회주의 국가 였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체제에 대한 호기심은 얼마만큼 채워졌것다, 비슷한 긴장을 하기가 싫었던 거였다. 남의 정치 체제나 문화, 국민소득들을 우리와 비교하지 안고 그 나름대로 사는 양상으로 그냥 바라볼 수는 없는 것일까? 될 수 있으면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것 까지도 잊어버리고 다만 여행자가 될 수 있다면, 그리하여 외국이나 외국인 앞에서 마음을 도사려 먹지 않고 그저 부드러운 시선으로 남의 좋은 것이나 나쁜 것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즐길 수 있다면 그거야말로 새로운 경험이 될 터였다. 이디오피아 여행기의 글과 사진에서는, 타델라 생각이 많이났다. 이디오피아는 그래도, 한때 독립국가로써 당당히 번영했던 나라인만큼 교육열이 높고 교육환경도 나을 줄 알았는데... 뽀얗게 먼지를 뒤집어쓴 칠판 하나를 두고 열댓명의 아이들이 바깥에서, 흙바닥에 앉아있는 모습을 사진으로 접하고 꽤 충격적이었다. 나에게... 학교에서 영어와 수학을 배우고 있는데 영어가 재미있다고 편지를 쓴 그아이도.. 저런 흙바닥에서 공부를 한다는 것일까...? 작년 봄인가.. 정말 순수한 의도로, 공부 열심히 하라고, 14k 도금된 클로버모양의 예쁜 책갈피를 지난번 편지에 같이 넣어보낸 내가 부끄러웠다. 흙바닥의 클로버 책갈피라.. 그아이는 날 어떻게 생각했을까? 아니 어쩌면.. 누군가 무언가 들어있다는걸 알아채고 (편지지도 두꺼운데다 책갈피가 얇아서 티도 안났지만..) 편지를 뜯어버렸을지도 모르겠다.. 가장인상깊었던 것은 마지막 부분에 실려있는 티베트 여행기 일 것이다. 티베트. 티베트에 대해서는 나는 아는 것이 없었다. 그러나 사진에서 보여지는 장엄하고 아름다운 자연경관들, 엄청나게 화려한 사원들은 대단했다. 그렇게 아름다운 사진들이 몇장건너 넘쳐남에도 불구하고 글에서 그려지는 티베트인들은... 박완서씨에게도 그랬지만 나에게도 알쏭달쏭이었다. ^^;;; 종교에 대한 열정, 현세의 비참한 생활. 구걸도 당당하게 요구한다는 인도거지와는 상반된 모습.. 이제 막 걷는 아기들도 '헝그리 헝그리'하며 구걸한다는 이야기는 마음을 아프게 했다. 가난함 때문이 아니라 비굴함 때문에. 달라이 라마와 판첸 라마에 대한 이야기는 티베트에 대한 나의 무지함을 드러내어주었고.. 옴마니 반메홈이라는 구절에 대한 이야기와 각종 불교관련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티베트 사람이라고 다 똑같은 생각을 가지고 산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 다행스러웠다. 도시 주변에서는 구걸로 근근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농촌.. 무슨무슨족 단위로 모여사는 농촌에서는 꺾이지 않는 자부심과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당당한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다른사람의 글(헬레나 노르베리-호지의 '라다크 체험기')에서 발췌한 구절도 있었는데 굉장히 좋은 내용인것 같아서 메모해본다. (p188) 나는 라다크 사람들이 그처럼 험난한 환경에서 어떻게 하여 생존해 가고 있는지를 배우기 시작했다. 나는 또한 '검소'라는 낱말의 의미를 배우기 시작했다. 서양에서는 '검소'라고 하면 늙은 아주머니와 자물쇠가 잠긴 광 같은 이미지를 떠올리게 도니다. 그러나 라다크에서 보는 검소함이라는 것은 사람들이 번영을 누리고 사는데 근원이다. 제한된 자원을 주의깊게 이용한다는 것은 인색함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검소함은 적은 것에서 많은 것을 얻어낸다는 것을 의미한다. |

